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살펴보는 판소리의 세계는 지역과 문화 환경에 따라 판소리 음악이 어떻게 다르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는 판소리의 세 가지 주요 유파가 지닌 음악적 특징과 그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지역 문화와 판소리 유파의 형성 배경
판소리는 독립된 예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역 문화와 생활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한 음악입니다. 판소리가 크게 꽃피운 호남 지역은 지리적 환경과 생활 방식이 동서로 뚜렷하게 갈라져 있었고 이러한 차이는 자연스럽게 음악 양식의 차이로 이어졌습니다. 지리산을 경계로 동쪽 지역은 산지가 많고 경상도와 인접해 있었으며 서쪽 지역은 평야와 바다를 끼고 있는 지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생활 방식과 정서가 달라졌고 그 결과 판소리의 표현 방식 또한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는 판소리뿐만 아니라 농악과 민요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우도 농악과 좌도 농악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발달한 것처럼 판소리 역시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음악적 개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판소리는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지역민의 삶과 감정이 녹아든 문화 표현이었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불러도 소리의 질감과 감정의 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판소리 유파의 형성은 단순히 음악 기법의 차이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성격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산촌 중심의 동쪽 지역에서는 강인하고 직선적인 정서가 발달했고 평야와 바다를 끼고 살아온 서쪽 지역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감정적인 표현이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동편제와 서편제라는 뚜렷한 판소리 양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음악적 특징과 표현 방식
동편제 판소리는 운봉 남원 구례 곡성 등 섬진강 동쪽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이 지역의 판소리는 대마디 대장단을 선호했고 잔기교보다는 소리 자체의 힘을 중시했습니다. 소리꾼은 통성으로 꿋꿋하고 튼실하게 소리를 냈으며 한 소절 한 소절을 힘 있게 밀어붙였습니다. 소리의 끝이나 아니리의 끝을 여운 없이 단호하게 끊는 것이 특징이었고 이는 쇠마치로 내리치듯 마친다는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했습니다.
동편제 소리는 전체적으로 호기 있고 장쾌한 인상을 주었으며 우조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감정을 섬세하게 흔들기보다는 큰 흐름과 기세를 중시했고 인물의 성격 역시 의젓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산촌의 거친 자연환경과 공동체 중심의 생활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서편제 판소리는 익산 고창 광주 나주 목포 등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서편제 소리는 애절하고 부드러우며 기교적인 요소가 풍부했습니다. 붙임새가 다양했고 소리의 꼬리가 길게 이어지며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냈습니다. 같은 대목이라 하더라도 동편제에 비해 훨씬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맛을 지녔습니다.
서편제는 평야와 바다를 끼고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소리였습니다. 생활의 여유와 감정의 교류가 비교적 풍부했던 환경 속에서 소리는 자연스럽게 곡선적인 흐름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편제는 감정 표현이 뛰어나고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이 만들어낸 판소리의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중고제의 성격과 현대 판소리의 변화
중고제는 경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판소리 양식입니다. 이 지역은 언어부터 전라도와 달랐고 민요의 토리 또한 달랐기 때문에 판소리를 부를 때 자연스럽게 다른 소리 투가 형성되었습니다. 경기 충청 지역 출신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부르면 발음과 억양 음색에서 호남 소리와는 다른 느낌이 나타났고 이것이 중고제라는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경기 충청 지역 출신의 명창들이 많아 중고제가 크게 발전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중고제는 점차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교통이 발달하고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판소리의 지역적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졌습니다. 본래는 지역과 사사 계보가 거의 일치했지만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동편 지역 출신이 서편 소리를 배우고 한 사람이 여러 제의 소리를 익히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판소리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음악 양식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지역 명칭이라기보다 음악적 성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판소리의 흐름을 보면 전체적으로 서편 계통의 소리가 널리 보급된 상황입니다. 그 결과 동편제 소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결합한 보성 소리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대의 환경 속에서 판소리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변화의 결과였습니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는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의 삶을 담아낸 판소리의 역사였으며 오늘날 판소리는 이 모든 유산 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