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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화로서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by 톡톡사구 2025. 12. 26.

민족 문화로서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는 판소리가 단순한 전통 음악을 넘어 우리 민족의 삶과 인식을 온전히 담아낸 문화임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판소리가 어떻게 하나 되는 문화가 되었고, 웃음을 통해 삶을 극복하며, 인간다움을 표현해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민족 문화로서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민족 문화로서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모두가 하나 되는 일체의 문화

판소리는 전문적인 창자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예술이지만, 창자 혼자만의 예술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문화였습니다. 고수의 북과 추임새, 그리고 청자의 적극적인 호응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판소리는 공연자와 관객이 엄격히 분리된 예술이 아니라, 판에 모인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의 문화였습니다. 창자는 소리를 이끌고, 고수는 장단으로 흐름을 잡았으며, 청자는 추임새로 판의 열기를 북돋았습니다. 이 세 요소가 혼연일체를 이룰 때 판소리는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무대 중심의 서양 공연 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서양의 공연 문화에서는 전문가의 연행을 관객이 침묵 속에서 감상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관객의 역할은 공연이 끝난 뒤 박수로 평가를 표현하는 데 국한되었습니다. 반면 우리 문화에서는 공연 중에도 적극적인 반응과 참여가 허용되었고, 오히려 그것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탈춤이나 굿, 농악에서도 연희자와 구경꾼은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한판을 이루었습니다.
판소리는 이러한 우리 문화의 일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이었습니다. 판의 성패는 창자 혼자의 기량이 아니라 판에 모인 모두의 호흡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판소리는 특정 계층이나 전문가 집단만의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민족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판소리를 단순한 직업 예술로만 판단하여 배제한 문화 정책은 우리 전통 문화의 본질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웃음을 통해 비애를 극복하는 문화

판소리는 웃음을 핵심 미학으로 삼아 온 문화였습니다. 해학과 골계는 판소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 중 하나이며, 실제로 판소리에는 웃음이 배제된 대목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장면이라 해도 판소리는 어딘가에 웃음을 심어 두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우리 민족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판소리에서 웃음은 감정의 긴장을 풀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슬픔과 비애가 극에 달했을 때 웃음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춘향가의 옥중 대목이나 수궁가의 용왕 득병 장면처럼, 비장해야 할 상황에서도 웃음이 삽입되는 것은 고통을 외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판소리는 웃음을 통해 비극을 상쇄했고, 이를 통해 삶을 계속 살아갈 힘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판소리의 웃음은 단순히 즐거워서 터져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웃음 자체를 즐거움으로 삼는 웃음이었습니다. 심청의 인당수행이나 춘향의 옥중 수난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눈물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애를 웃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민족 문화 전반에서 발견됩니다. 상가에서조차 웃음을 허용하고, 다시래기굿과 같은 의례에서 해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판소리는 이러한 웃음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술이었습니다. 웃음은 강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절실히 필요한 삶의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흥부의 가난에서도 웃음을 길어 올렸고, 심봉사의 불행에서도 웃음의 여지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담아낸 인간다움의 문화

판소리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예술이었습니다. 그 인간다움은 무엇보다도 양면성의 수용에서 드러났습니다. 판소리는 하나의 성격이나 하나의 가치만을 강조하지 않았고,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상층과 하층의 언어가 뒤섞이고, 고상함과 천박함이 한 장면 안에서 교차했습니다. 인물들 또한 일관된 성격보다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복합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춘향은 정절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욕망과 두려움을 지닌 인물이었고, 흥부는 양반이면서도 양반답지 않은 소탈함과 비루함을 함께 지녔습니다. 심봉사는 비장함과 경망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며, 한 인물 안에 숭고함과 속됨이 공존할 수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양면성은 예술적 일관성만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결함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판소리를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일관된 존재가 아니며, 슬픔 속에서도 웃고, 비루함 속에서도 숭고함을 드러냅니다. 판소리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 속 인물들은 영웅적 이상형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처럼 느껴졌습니다. 판소리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 인간다움에 있었습니다.
결국 판소리는 우리 민족이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였습니다. 일체의 문화로서 함께 어우러지고, 웃음으로 비애를 극복하며, 인간의 모순과 양면성을 그대로 품어온 판소리는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는 민족 문화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