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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문화로서 깊고 넓게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by 톡톡사구 2025. 12. 27.

음악 문화로서 깊고 넓게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는 판소리가 단순한 전통 성악이 아니라 고도의 음악 체계와 창조성을 지닌 예술임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판소리 음악의 수준과 폭, 장단의 창조성, 그리고 고수와 창자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생동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음악 문화로서 깊고 넓게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음악 문화로서 깊고 넓게 살아 있는 판소리의 세계

수준 높고 폭넓은 판소리 음악의 구조

판소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축적된 음악 문화입니다. 판소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예전에는 광대라고 불렀으나, 이 말에 담긴 얕보는 뉘앙스로 인해 오늘날에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창자라는 표현이나, 기량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명창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칭의 변화만 보아도 판소리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수준 높은 예술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판소리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적 변이의 폭이 매우 넓다는 점입니다. 판소리는 구성음과 선율의 흐름, 그리고 정서적 분위기에 따라 평조, 우조, 계면조로 나뉘며, 이를 다시 세분하여 진우조, 평우조, 평계면, 단계면, 진계면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이러한 조의 구분은 단순한 음계의 차이를 넘어서, 이야기의 성격과 인물의 감정, 장면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구체화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또한 판소리에는 다양한 창법이 존재했습니다. 경기 민요의 선율에서 영향을 받은 경드름이나, 말을 모는 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는 설렁제 등은 판소리가 민속적 기반 위에서 얼마나 폭넓게 음악적 자원을 흡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자의 목소리 또한 높낮이에 따라 최상성에서 최하성까지 세분되었고, 음질에 따라서도 통성, 철성, 수리성, 세성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인식하고, 그 가능성을 극한까지 탐구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판소리는 체계적이면서도 유연한 음악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작품은 일정한 유형을 공유하지만, 창자의 개성과 해석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변주되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고정된 음악이 아니라,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품은 살아 있는 음악 문화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지속과 변화를 이끄는 더늠과 바디의 전통

판소리 음악이 살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더늠과 바디라는 독특한 전승 방식에 있었습니다. 더늠이란 특정 명창이 새롭게 창안하거나 특별히 잘 불렀던 대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판소리 음악이 단순한 모방의 연속이 아니라, 창조적 성취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구조였음을 의미했습니다.
더늠은 개인의 재능과 해석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창자들에게 계승되고 확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늠은 하나의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각 명창의 개성과 시대적 감각에 따라 미묘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이를 바디라고 부르며, 특정 음악적 계보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목이 누구의 바디라고 불릴 때, 그 말 속에는 창작자와 계승자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승 방식은 판소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전통을 지키되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더하면서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오래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늘 현재진행형의 예술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창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창자는 단순히 기존의 소리를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감각과 해석으로 소리를 다시 빚어내는 음악가였습니다. 같은 대목이라 하더라도 창자의 성음, 장단 운용, 사설 처리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습니다. 판소리는 이렇게 개인의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전통의 틀을 유지하는 균형 잡힌 음악 문화였습니다.

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북 장단의 예술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고수는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동시에, 소리의 흐름과 의미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 창작자였습니다.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장단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으로 나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념적 구분이었습니다. 실제 연행에서는 장단의 박 수와 강약, 쉼과 연결이 매번 달라졌습니다.
같은 진양조라도 어떤 장면에서는 북을 거의 치지 않다가, 어떤 순간에는 잔가락을 더해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는 정해진 규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소리의 의미와 분위기에 대한 고수의 즉각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고수의 고법은 철저히 개성적이었고, 그 수준은 창자의 소리와 얼마나 잘 호흡하는가에 따라 평가되었습니다.
고수는 엇부침, 밀부침, 당겨부침 등 다양한 변주 기법을 활용하여 장단을 유연하게 운용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음악적 긴장을 조절하고, 소리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고수는 추임새를 통해 창자를 격려하고, 청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때로는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고, 판의 흐름을 조정하는 지휘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판소리의 장단은 매번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같은 소리라도 같은 고법으로 반복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일회적이고 현장적인 음악이 되었고,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살아 있는 예술로 완성되었습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은 이러한 판소리 음악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었습니다. 판소리는 창자와 고수가 함께 만들어 가는 음악 문화였으며, 그 창조성은 지금까지도 판소리를 생명력 있는 예술로 지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