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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세계, 판소리의 장단 ②

by 톡톡사구 2025. 12. 17.

이전 글에서 살펴본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이 판소리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면, 자진모리 이후의 장단은 판소리의 긴박감과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장단들은 극적 상황이 급변하거나 사건이 몰아칠 때 사용되며, 판소리 서사의 추진력을 책임집니다.

판소리는 장단이라는 틀 위에 구축되는 성악 예술입니다. 아무리 소리를 잘하는 명창이라 하더라도 장단을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판소리에서는 예로부터 고수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전글에 이어서 판소리의 장단에 대해 더 살펴보겠습니다.

 

판소리의 세계, 판소리의 장단 ②
판소리의 세계, 판소리의 장단 ②

자진모리 장단

중중모리 장단을 더욱 빠르게 몰아가면 자진모리 장단이 됩니다. 판소리의 장단은 빠르기에 따라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룹니다. 이때 장단 안에서의 기본적인 세의 구조, 즉 치고 달고 맺고 푸는 흐름은 유지되지만, 장단이 빨라질수록 맺는 박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맺는 박은 모든 장단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음악이 하나의 단락을 이루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등장합니다. 자진모리 장단에서는 대부분 맺지 않고 달리다가, 반드시 맺어야 할 대목에서만 크게 맺는 박을 쳐 주며 진행합니다.

자진모리 장단은 빠른 장단이기 때문에 극적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거나 무엇인가를 숨 가쁘게 나열해야 하는 대목에서 사용됩니다. 위급한 상황이나 긴박한 행동 묘사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형식적으로 자진모리는 3분박 4박자를 기본으로 하지만, 실제 소리에서는 가사에 따라 2분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장단 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빠르기에 따라 느린 자진모리와 일반 자진모리로 나뉘며, 느린 자진모리는 이야기를 엮듯이 풀어갈 때, 일반 자진모리는 격동적이고 급박한 장면에서 주로 쓰입니다.

휘모리 장단

휘모리 장단은 자진모리보다 더 빠른, 판소리에서 가장 빠른 장단입니다. ‘휘몰아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과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자진모리 장단의 반 장단이 휘모리 장단 하나에 해당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휘모리는 보통 2분박의 매우 빠른 4박자로 구성됩니다. 판소리에서는 어떤 일이 순식간에 전개될 때 사용되며, 갑자기 튀어나오듯 등장하기보다는 상황이 점차 빨라지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휘모리 장단은 이야기의 절정과 긴박함을 음악적으로 구현하는 기능을 합니다.

엇모리 장단

엇모리 장단은 5박을 두 번 이어 붙인 10박 장단입니다. 이 장단은 일반적인 인간 세계의 리듬과는 다른 낯선 느낌을 주며, 판소리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도사나 호랑이와 같은 신령하거나 비범한 존재가 등장할 때 사용됩니다.

엇모리 장단에서 맺는 박은 전체 10박 가운데 8박에 해당합니다. 장단의 흐름으로 보면 셋째 부분의 뒤엣박에 해당하며, 박자의 어긋남에서 오는 긴장감과 신비로움이 등장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판소리의 장단은 단순한 속도의 구분이 아니라, 이야기의 성격과 감정의 흐름을 음악적으로 조직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하여 휘모리로 치닫는 장단의 변화는 곧 판소리 서사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고수와 창자가 장단을 통해 호흡을 맞추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청자는 그 흐름 속에서 감정의 고조와 해소를 함께 경험합니다.

판소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리 자체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떠받치고 이끄는 장단의 세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단 위에서 이야기는 달리고 멈추며, 다시 숨을 고릅니다.